안동 랜선 사이버 투어 3탄 – 영호루 VR :: 안동 비대면 여행지, 영호루, 안동 랜선 여행

오늘은 안동 랜선 사이버 투어 3탄으로 한강 이남의 대표적인 누각 중 하나인 안동 영호루 VR을 제작했습니다. 1탄 병산서원, 2탄 최화정에 이어 오늘 세 번째로 보는 영호루입니다. 앞서 설명드린 것처럼 VR 제작은 사진이나 영상이 아니기 때문에 아래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으니 클릭하셔서 사이버 투어를 하시기 바랍니다. 휴대폰으로 VR을 볼 경우 가로로 하여 터치로 조절하고, 컴퓨터로 볼 경우 마우스로 클릭이나 스크롤하여 확대/축소가 가능합니다. 영호루 VR링크 오늘은 안동 랜선 사이버 투어 3탄으로 한강 이남의 대표적인 누각 중 하나인 안동 영호루 VR을 제작했습니다. 1탄 병산서원, 2탄 최화정에 이어 오늘 세 번째로 보는 영호루입니다. 앞서 설명드린 것처럼 VR 제작은 사진이나 영상이 아니기 때문에 아래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으니 클릭하셔서 사이버 투어를 하시기 바랍니다. 휴대폰으로 VR을 볼 경우 가로로 하여 터치로 조절하고, 컴퓨터로 볼 경우 마우스로 클릭이나 스크롤하여 확대/축소가 가능합니다. 영호루 VR링크

새로운 프로젝트 | Panotour Virtual 투어에 의해 생성된 가상 투어는 Panotourkcm0926.ipdisk.co.kr 에 의해 생성되었습니다 새로운 프로젝트 | Panotour Virtual 투어에 의해 생성된 가상 투어는 Panotourkcm0926.ipdisk.co.kr 에 의해 생성되었습니다

 

사이트 들어가시면 위 메뉴바에서 영호루 찾아 클릭하시면 됩니다. 영호루가 보이는 상태로 그대로 두면 자동으로 천천히 회전하기 때문에 배경음악과 함께 투어를 할 수 있고 마우스를 이용해서 빠르게 돌리거나 스크롤해서 확대해서 보시면 됩니다. 사이트 들어가시면 위 메뉴바에서 영호루 찾아 클릭하시면 됩니다. 영호루가 보이는 상태로 그대로 두면 자동으로 천천히 회전하기 때문에 배경음악과 함께 투어를 할 수 있고 마우스를 이용해서 빠르게 돌리거나 스크롤해서 확대해서 보시면 됩니다.

영호루 주변의 모습을 360도 회전하며 파노라마로 볼 수 있는데 낙동강과 함께 안동 시내 전경이 보이고 영호대교를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영호루에 대해 볼까요? 예로부터 안동의 영호루는 경남 밀양의 영남루(령), 진주의 촉석루(矗), 전라북도 남원의 광한루(광한루)와 함께 한강 이남의 대표적인 누각으로 불려 왔다. 창건에 관한 문헌이 없어 언제 누구에 의해 건립되었는지 잘 알 수 없으나 천여 년 동안 그 이름이 전통 웅부 안동과 함께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영호루는 철근 콘크리트로 된 한식 누각이다.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의 팔작지붕으로 북쪽에는 공민왕 친필 현판을 걸었고, 남쪽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인 ‘영호루’를 걸었다. 내부에는 갑술년 홍수 때 유실되어 회수한 현액과 새로 복원한 현액을 게시하였다. 현재 게시판으로 되어 있는 시판은 12점으로 제영 1점과 현판 2점이 있다. 영가지에 의하면 고려 공민왕 10년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 왕이 이곳 복주로 백관을 이끌고 피신하였다고 한다. 왕은 피난 중의 쓸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흔히 남문 밖에 우뚝 서 있는 영호루를 찾았고, 때로는 누각 아래 강에 배를 띄우기도 했으며, 사격장에서 활쏘기 경기도 했다고 한다. 난이 평정되어 환궁한 왕은 복주를 대도호부로 승격시키고 영호루를 잊을 수 없어 친필로 한 영호루의 3자가 적힌 금자 현판을 보내 누각에 달았다고 한다. 그 후 조선 중기 명종 2년(1547년)의 대수로 누각은 유실되었으나 현판만은 김해까지 떠내려가 발견되었고, 6년 후인 1552년 안동부사 안항준이 중창하였으며, 영조 51년(1775년) 다시 홍수로 유실되어 부사 신맹빈(申孟彬)에 의해 중건되었다. 이처럼 홍수로 인해 두 차례 중건된 영호루는 정조 15년(1792년) 홍수 때 또 유실되었고, 4년 후 부사 이집두가 중건하여 100여 년 동안 안동의 관문으로 그 위용을 갖추었으나 갑술년(1934년)의 대수(大水)를 면치 못했다. 안동대 구간 도로를 연결하는 안동교 공사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누 위에서 휴식하는 동안 갑자기 물이 밀려와 많은 사람들과 함께 떠내려갔다고 한다. 다음날 구담 부근에서 사람들은 무사히 구했으나 누각은 유실되고 ‘금자현판’만은 몇 달 뒤 선산군 구미리 부근의 강물 속에서 다시 찾았다고 한다. 이처럼 파란을 겪던 영호루가 사라지면서 강변에 빈터만 보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이에 전통과 옛 문화를 숭상하고 향토애(향)가 짙은 안동시 군민들이 1969년 12월 ‘영호루 재건 추진 위원회’를 조직하여 마침내 안동시가 남편의 강 언덕인 정하동에 1,085평의 부지를 확보하여 1970년 11월 역사적인 영호루의 재건을 보게 되었다. 노송과 잡목이 우거진 언덕에 북향으로 자리 잡은 새 영호루에 올라보면 멀리 북서쪽으로 선비의 영봉 학가산이 웅장하게 솟아 있어 강 건너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더욱이 시가지를 둘러싼 영남산 줄기는 계절에 따라 색깔이 변하기 때문에 여름의 신록, 가을의 단풍은 모두 시가지의 모습을 바꾼다. [네이버 지식백과] 영호루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영호루 주변의 모습을 360도 회전하며 파노라마로 볼 수 있는데 낙동강과 함께 안동 시내 전경이 보이고 영호대교를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영호루에 대해 볼까요? 예로부터 안동의 영호루는 경남 밀양의 영남루(령), 진주의 촉석루(矗), 전라북도 남원의 광한루(광한루)와 함께 한강 이남의 대표적인 누각으로 불려 왔다. 창건에 관한 문헌이 없어 언제 누구에 의해 건립되었는지 잘 알 수 없으나 천여 년 동안 그 이름이 전통 웅부 안동과 함께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영호루는 철근 콘크리트로 된 한식 누각이다.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의 팔작지붕으로 북쪽에는 공민왕 친필 현판을 걸었고, 남쪽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인 ‘영호루’를 걸었다. 내부에는 갑술년 홍수 때 유실되어 회수한 현액과 새로 복원한 현액을 게시하였다. 현재 게시판으로 되어 있는 시판은 12점으로 제영 1점과 현판 2점이 있다. 영가지에 의하면 고려 공민왕 10년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 왕이 이곳 복주로 백관을 이끌고 피신하였다고 한다. 왕은 피난 중의 쓸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흔히 남문 밖에 우뚝 서 있는 영호루를 찾았고, 때로는 누각 아래 강에 배를 띄우기도 했으며, 사격장에서 활쏘기 경기도 했다고 한다. 난이 평정되어 환궁한 왕은 복주를 대도호부로 승격시키고 영호루를 잊을 수 없어 친필로 한 영호루의 3자가 적힌 금자 현판을 보내 누각에 달았다고 한다. 그 후 조선 중기 명종 2년(1547년)의 대수로 누각은 유실되었으나 현판만은 김해까지 떠내려가 발견되었고, 6년 후인 1552년 안동부사 안항준이 중창하였으며, 영조 51년(1775년) 다시 홍수로 유실되어 부사 신맹빈(申孟彬)에 의해 중건되었다. 이처럼 홍수로 인해 두 차례 중건된 영호루는 정조 15년(1792년) 홍수 때 또 유실되었고, 4년 후 부사 이집두가 중건하여 100여 년 동안 안동의 관문으로 그 위용을 갖추었으나 갑술년(1934년)의 대수(大水)를 면치 못했다. 안동대 구간 도로를 연결하는 안동교 공사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누 위에서 휴식하는 동안 갑자기 물이 밀려와 많은 사람들과 함께 떠내려갔다고 한다. 다음날 구담 부근에서 사람들은 무사히 구했으나 누각은 유실되고 ‘금자현판’만은 몇 달 뒤 선산군 구미리 부근의 강물 속에서 다시 찾았다고 한다. 이처럼 파란을 겪던 영호루가 사라지면서 강변에 빈터만 보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이에 전통과 옛 문화를 숭상하고 향토애(향)가 짙은 안동시 군민들이 1969년 12월 ‘영호루 재건 추진 위원회’를 조직하여 마침내 안동시가 남편의 강 언덕인 정하동에 1,085평의 부지를 확보하여 1970년 11월 역사적인 영호루의 재건을 보게 되었다. 노송과 잡목이 우거진 언덕에 북향으로 자리 잡은 새 영호루에 올라보면 멀리 북서쪽으로 선비의 영봉 학가산이 웅장하게 솟아 있어 강 건너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더욱이 시가지를 둘러싼 영남산 줄기는 계절에 따라 색깔이 변하기 때문에 여름의 신록, 가을의 단풍은 모두 시가지의 모습을 바꾼다. [네이버 지식백과] 영호루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이번 영호루 VR 제작은 상공 드론 촬영과 지상 360도 파노라마로 함께 찍었지만, 지상에서는 입구에 항일투사 김지섭 선생의 기념비와 누각 아래 재건기념비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강가에 지어져 홍수로 유실되었고, 여러 번의 수복을 거쳐 1970년 11월에 오늘의 자리에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 영호루 VR 제작은 상공 드론 촬영과 지상 360도 파노라마로 함께 찍었지만, 지상에서는 입구에 항일투사 김지섭 선생의 기념비와 누각 아래 재건기념비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강가에 지어져 홍수로 유실되었고, 여러 번의 수복을 거쳐 1970년 11월에 오늘의 자리에 있게 되었습니다.

영호루에 오르면 고려 공민왕의 친필 현판이 걸려있고 안쪽에는 많은 문인들이 영호루에 올라 많은 시를 남겼습니다. 김방경, 정도전, 정몽주, 김종직, 이현보, 이황… 이름만 들어도 알 것 같은 분이 영호루에 대해서 글을 써놨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주 큰 글씨로 낙동상류연좌명루라고 쓴 글씨를 볼 수 있는데 1820년에 안동부사 김학순이 영호루를 중수하면서 현판을 남겼다고 합니다.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수시로 영호루를 찾아 쓸쓸한 마음을 달래주었듯이 영호루가 늘 이곳에서 안동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었으면 합니다. VR을 통해 본 고즈넉한 분위기를 엿볼 수 있었던 안동 누각, 영호루의 랜선 투어는 어떠셨나요? 다음 안동 사이버 투어 4탄도 기대해 주세요! 영호루에 오르면 고려 공민왕의 친필 현판이 걸려있고 안쪽에는 많은 문인들이 영호루에 올라 많은 시를 남겼습니다. 김방경, 정도전, 정몽주, 김종직, 이현보, 이황… 이름만 들어도 알 것 같은 분이 영호루에 대해서 글을 써놨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주 큰 글씨로 낙동상류연좌명루라고 쓴 글씨를 볼 수 있는데 1820년에 안동부사 김학순이 영호루를 중수하면서 현판을 남겼다고 합니다.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수시로 영호루를 찾아 쓸쓸한 마음을 달래주었듯이 영호루가 늘 이곳에서 안동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었으면 합니다. VR을 통해 본 고즈넉한 분위기를 엿볼 수 있었던 안동 누각, 영호루의 랜선 투어는 어떠셨나요? 다음 안동 사이버 투어 4탄도 기대해 주세요!

 

세계유산 병산서원에 활짝 핀 백일홍, 백일홍, 백일홍, 안동 비대면 여행지, 안동의 볼거리, 코로나19 확산으로 더욱 밖에 나가기 어려워진 요즘입니다. 여기에 무더위가 기승을 부려… blog.naver.com 세계유산 병산서원에 활짝 핀 백일홍, 백일홍, 백일홍, 안동 비대면 여행지, 안동의 볼거리, 코로나19 확산으로 더욱 밖에 나가기 어려워진 요즘입니다. 여기에 무더위가 기승을 부려서… blog.naver.com

 

안동랜선 사이버투어 2탄 – 최화정 VR : 안동 비대면 여행지, 최화정, 안동랜선 여행 오늘은 안동랜선 사이버투어 2탄으로 최화정 VR을 준비해봤습니다. 백일홍이 가득 피어난 병산서원의 어머니… blog.naver.com 안동랜선 사이버투어 2탄-최화정 VR :: 안동 비대면 여행지, 최화정, 안동랜선 여행 오늘은 안동랜선 사이버투어 2탄으로 최화정 VR을 준비해봤습니다. 백일홍이 가득 피어난 병산서원의 어머니… blog.naver.com

 

 

김충모안동시SNS기자단/ 8월취재기사 김충모안동시SNS기자단/ 8월취재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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